최병준 목사 "농촌 미자립교회에서 성장하는 교회로..."

  • 2020-06-19 15:35

<크리스천 초대석>창립 40주년 맞은 수산감리교회 최병준 목사
농촌 미자립 교회에서 성장할 수 있던 비결은 나눠주는 교회로 변모
괸당 문화가 강한 동네에서 인정받는 교회로 탈바꿈
안디옥 교회처럼 선교와 섬김의 역할 하는 것이 비전

창립 40주년 맞은 수산감리교회 최병준 목사

 


수산감리교회가 올해로 창립 40주년을 맞았다. 최병준 목사는 제주에서 40년은 짧지 않은 시간이라고 생각하고 지역에서 인정받을 수 있도록 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다고 전했다. 또한 수산교회의 롤모델인 안디옥 교회처럼 지역에서 선한 영향력을 끼치고 선교에 힘쓰는 교회가 되길 원한다고 말했다.

<일문일답>

▶수산교회가 창립 된지 올해로 40주년이다. 소감이 어떤지?

=40년이라는 기간이 남들이 볼 때는 뭐 100년, 150년의 역사를 가진 교회 입장에서는 크게 느끼지 못하겠지만 나는 40년이라는 세월이 제주도에서 그렇게 짧지만은 않은 세월이었다고 생각한다.

그 기간 동안 수산이라고 하는 지역사회에서 수산교회가 인정을 받는 교회로 성장했다는 것이 참 감개무량하고 기쁘다.

▶수산교회가 처음 어떻게 세워지게 됐는지 소개해달라.

=원래 수산교회는 서울에 있는 염창감리교회에서 개척을 한 교회다.

1978년도에 염창교회에서 75주년 기념으로 교회를 개척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고 당시 염창교회 다니는 문성기 장로님과 사모님이 수산지역 출신이셨다.

그 두 분이 제주도에는 교회가 많지 않기에 제주에서 개척 후보들을 물색 해보자고 제안했고 1978년도에 실사팀이 내려와 교회가 없던 수산 지역을 후보지로 정했다.

당시 교회를 세우기 전 물메 초등학교에서 2년 동안 여름성경학교를 개최했고 학교에다가 작은 도서관도 만들어주면서 지역주민들로부터 좋은 반응을 얻었다.

75주년 되는 1980년도에 본격적으로 부지를 매입하고 개척 설립을 하게 됐다.

초대 담임목회자로 안승철 목사님이 첫 목회지로 전도사일 때 파송을 받아 왔고 고생 끝에 교회건축을 한 뒤 3-4년 목회하다가 육지로 가셨다.

▶당시 수산지역에 다른 교회는 없었는지?

=교회가 전혀 없었다. 근처 하귀 지역에는 교회가 있었는데 지금은 애조로가 생겨서 수산지역이 보이지만 이전에는 수산이라는 동네가 있는지조차도 몰랐었던 시절이다.

내가 부임해서 왔을 때만 해도 일주도로가 없었고 수산하면 표선에 있는 수산지역만을 생각했던 시절인데 택시기사 분들도 애월 지역에 있는 수산이라고 얘기하지 않으면 그냥 표선 쪽으로 방향을 틀더라.

▶목사님은 언제 부임하셨는지?

=1999년 8월에 7대 목회자로 부임했다.

제주와는 전혀 연고가 없었고 단지 신혼여행 와서 “우리가 나중에 여기 와서 목회했으면 좋겠다.”고 그냥 지나가는 말로 얘기했던 것이 다였다.

당시 삼천포에서 목회를 하고 있었는데 안승철 감리사님이 전화를 하셔서 수산교회에 자리가 비어 있으니 가라고 하셔서 오게 되었다.

지금도 생각나는 것이 토요일에 전화를 주셔서 당장 내일 주일설교를 하라고 하셔서 갑자기 가게 되었었다.

▶부임한 이후 수산교회에는 여러 변화들이 있었는지?

=당시 수산교회는 굉장히 약한 미자립교회였다.

성도님들이 교회가 어렵다보니 외부에서 많은 도움을 받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계셨다.

하지만 나는 교회가 성장하려면 받기보다는 주는 교회가 되어야 된다고 생각했고 우리교회 표어도 ‘하나님과 함께 일을 성취하는 교회’로 정했다. 우리의 힘으로는 아무리 해도 안 되지만 하나님과 함께 일하면 하나님께서 책임져 주시니 않겠느냐? 단지 우리는 하나님의 역사에 조금 거들면 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1년에 한 번씩 교회 교인들이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서 했는데 제일 처음에 한 공사가 마당 포장공사였다.

비만 오면 좀 질퍽질퍽했었는데 시멘트로 포장을 했고 다음은 20년 넘은 지붕공사를 하자 그래서 일단은 지붕공사를 하고 그 다음에 그 내부를 좀 어떻게든 해보자 그래서 페인트칠 하기도 하고 그렇게 1년에 하나씩 실행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교회가 형편이 어려워서 도움을 받으면서 생활을 했는데 이제는 좀 줘야 되지 않겠는가 해서 우리보다 좀 약한 지방회 감리교회의 후배 전도사님을 좀 도와주면 좋겠다고 했더니 처음에는 성도님들도 좀 못마땅하게 생각하셨다.

그때 당위성을 설명을 하니 성도님들도 마지 못해서 그렇게 하자고 하셨던 것이 그 다음에는 어느 교회에서 좀 이게 좀 부족하다고 하면 성도들이 도와주자고 하시더라.

그 이후로 다른 교회에 베풀기 시작하면서 우리 교회 재정도 조금씩 늘어나기 시작했고 또 교인의 숫자도 조금씩 늘어나기 시작했다.

지금은 나름대로 여력이 되는 대로 충분히 도울 수 있는 교회로 성장했고 제주지역 감리교회가 마흔여섯 곳 정도 되는데 그 가운데 중상위권 정도로 성장했다.

또 성도님들도 내가 얘기하기 전에 어느 교회가 좀 어렵다고 하는데 좀 도와주자고 먼저 얘기하신다.

▶열악했던 상황에서 성도들이 성장한 모습을 보면 굉장히 뿌듯하실 것 같다.

=목회자의 바람은 교인들이 성경 말씀 안에서 완벽한 교인이기를 원한다.

목회자가 일주일에 열 번 이상의 설교를 하지만 목회자의 발언처럼 성도들이 확 변화되지는 않는다. 때로는 천사 같은 모습인데 어떤 때는 그 천사 같은 모습은 없어지고 자기만 아는 이기적인 모습으로 비춰질 때 실망하는 마음이 생긴다.

설교를 그렇게 열심히 했는데 왜 안 변할까 싶더라.

어느 주일이었는데 설교의 주제가 사랑이었다. 그래서 서로 사랑하고 다투지 말고 내 것을 내려놓고 남을 먼저 세워주자는 내용의 설교를 했는데 그날 점심 먹을 때 주방에서 다투는 소리를 들었을 때 내가 설교를 왜 했을까? 싶더라.

근데 사람이라는 게 사람의 마음이 어느 날 갑자기 확 변하는 게 아니고 조금씩 변하는 거더라. 거기에 마음의 위로를 받고 있다.

▶20여 년간 목회하면서 힘들었던 점은 무엇인가?

=아무래도 제주도에서 시골에서 목회하는 분들은 그럴거다.

동네 분들이 외부에서 처음 이사 온 분들에 대해서 안 좋은 시선으로 바라보는 거다.

내가 수산교회가 세워진지 20년 만에 7대 목회자로 왔다. 그러면 거의 3, 4년에 한 번씩 목회자가 바뀐건데 교회 교인들도 그렇고 동네 사람들도 그렇고 한 3, 4년 지나면 또 다른 데로 갈 사람이니까 마음의 문을 안 여는 거다.

예전에 안성철 목사님이나 박종환 목사님이 제주도에서 목회하려면 10년은 각오해야 된다고 하시더라.

제주지역에서 5년 지나면 동네 사람들이 인사하기 시작할 거고, 10년이 지나면 아는 척할 거다 그렇기 때문에 최소한 10년은 있어야 되지 않겠냐고 하셨다.

그래서 10년 정도가 될 때까지 마음 적으로 힘들었던 것 같다.

▶솔직히 제주를 떠나고 싶다는 마음은 안 드셨는지?

=우리 교회 위로 비행기가 지나간다.

평소에는 괜찮았는데 마음에 상처를 받았을 때는 저 비행기를 타고 가버릴까 그런 생각이 들기도 했었다.

근데 이러나 저러나 10년을 기약 했으니 10년만 있자고 버텼고 그러다 20년이라는 세월이 흘러버렸다.

▶목사님의 비전은?

=우리 교회의 모델이 안디옥 교회다.

지역에 선한 영향을 끼친 안디옥 교회처럼 수산교회가 제주지역에서 그런 교회로 소문났으면 하는 바람이다.

또 안디옥 교회가 최초로 선교사를 파송했던 것처럼 우리 교회도 선교사를 돕는 교회로 성장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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