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전쟁 70주년…"나라와 통일을 위한 기도 이어가야"

  • 2020-06-26 11:23

[미션 인터뷰] 최철재 장로(한국보훈선교단 속초지회장, 속초만천교회)
속초·고성·인제·양구등 강원지역 6·25전투전적비 돌아봐
백골병단전투에서 하나님을 향한 믿음…채명신장군 기억에남아
"나라와 통일을 위한 기도…골방과 교회에서 이어가야"

■ 방송 : 강원영동CBS <미션인터뷰>(주일 10:05~10:30)
■ 채널 : 표준 FM 91.5MHz
■ 진행 : 최진성 아나운서
■ 출연 : 최철재 장로(한국보훈선교단 속초지회장, 속초만천교회)


◇ 최진성> 하나님께서 주시는 마음으로 우리 지역에서 귀한 활동을 이어가는 분들의 이야기 강원영동 CBS 미션인터뷰, 안녕하세요. 최진성입니다. 6월하면 우리가 늘 떠올리게 되는 날들이 있죠. 바로 6․25. 또 6월은 호국 보훈의 달입니다. 사실 다른 때는 워낙 일상이 바쁘고 그래서 지나가더라도 이 6월만큼은 나라에 대해서 아마 적어도 한 번 이상은 생각하게 되는 그런 달이 아닐까 싶습니다. 오늘은 한국보훈선교단 속초지회장으로 활동하고 있는 최철재 장로님을 모시고 이야기 나누는 시간으로 준비했습니다. 장로님 안녕하세요.
한국보훈선교단 최철재 속초지회장(사진=강원영동CBS)

 


◆ 최철재 장로> 안녕하십니까. 최철재입니다. 소개해 주신 대로 한국보훈선교단 속초지회장 직임을 맡고 있고 섬기는 교회는 속초만천교회입니다. 이명형 목사님이 시무하시는 그리고 직장은 경동대학교 교수로 올해 32년째 근무하고 있습니다.

◇ 최진성> 네. 6월이라고 하면 가장 바쁜 달이 아닐까 싶어요. 보훈가족 분들도 만나고 위로회도 갖고 또 여러 시간도 보내는 시기일텐데 한국보훈선교단이 늘 해 왔던 6월의 활동, 코로나-19 이전과 또 코로나19를 보내고 있는 지금, 차이가 있나요?

◆ 최철재 장로> 뭐. 아무래도 우리 보훈선교단 자체적인 행사가 있을 수가 있고 또 기독교연합회 하고 같이 해야 되는 행사가 있는데 2월 이후로는 기독교연합회에서 부활절 예배도 제대로 못 드리고 여러 가지로 행사도 많이 위축 돼 있는 상황입니다.

◇ 최진성> 일단 한국보훈선교단이 어떤 조직인지 소개해 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 최철재 장로> 저 역시도 한국보훈선교단에 대해 잘 몰랐습니다. 그런데 보훈선교단을 맡아서 진행을 하다 보니까 역사적으로 꽤 오래된, 1968년 이미 설립이 된 사단 법인입니다. 한국보훈선교단이 전국에 8개 지부가 있고요. 보훈처의 후원으로 상이군경 및 국가유공자들로 조직되어 있으며 나라를 위한 기도 또 보훈가족을 위로하고 섬기는 일, 또 나라 사랑에 대한 계승 정신을 발휘하는 일들을 쭉 해오고 있습니다.

◇ 최진성> 속초 지회에서는 지역에서 할 수 있는 활동들도 해 오셨잖아요.

◆ 최철재 장로> 2014년부터 실제로 운영을 해 왔는데 제가 직접 나서서 한 건 아니고 김석규 강원지부장님 이 계십니다. 올해 은퇴 하셨는데 그 목사님이 주축이 되셔서 일을 해 왔습니다. 매월 한 달에 한 번씩 모여서 나라사랑기도회를 정례적으로 진행을 해 왔고요. 3월에는 삼일절, 6월에는 말씀하신대로 한국보훈선교단이 주관해서 보훈의 달에 행사, 유공자 가족 위로회 그다음 8.15 광복절 기념예배 이렇게 주로 큰 행사를 진행합니다.

◇ 최진성> 올해는 조금 더 특별한 해입니다. 6.25 전쟁이 발발한지 70주년이 되는 해인데요. 또 최근에는 이와 관련해서 특별한 일정을 보내셨다고요.
자료사진(사진=최철재장로제공)

 


◆ 최철재 장로> 네. 올해가 말씀하신 대로 6.25 전쟁 발발 70주년 아닙니까? 우리 기독교인들은 70년 하면은 언뜻 떠오르는 게 있죠. 희년입니다. 회복을 의미하는 ‘하나님의 회복의 연대가 가까이 왔다’ 라고 하는 그런 강렬한 느낌도 있고 ‘그것이 곧 기도제목으로 이어져야 되겠다’ 그러면 ‘이것을 어떻게 구체적으로 실천에 옮기는바가 좋겠는가’ 이런 의미로 해서 그 동안 6.25 관련 전적비, 전투전적비를 소홀히 했었어요. 사실은 제 개인적인 고백이기도 한데 저는 특별한 교수라고 먼저 소개를 해 드리고 싶습니다. 28년 전부터 우리 야간 반에 군인 현역 직장인반을 운영해 왔어요. 그래서 올해로 1천여 명의 학생들을 배출 했습니다. 그러다 보니까 학교에 와서 강의하는 적도 있었고 아니면 계약학과라고 해서 전방, 속초에서부터 52km 떨어진 서화, 천도리까지 가서 강의실을 개설해서 5년 동안 학업을 진행해왔고 작년까지는 '육군 과학화전투훈련단 KCTC'라고 하는 부대에서도 계약학과를 5년 동안 유지를 해 와서 나름대로 군인들과의 관계가 좀 특별한 그런 교수입니다. 자랑 같습니다만 국방부장관 감사장도 받고 대통령표창 까지도 받았지만 다 하나님의 은혜라고 생각을 합니다. 그런데 군인들을 지도해오면서도 전적비에 대한 6.25의 현장을 보는 데에는 우리가 관심이 없었어요. 그래서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 최진성> 우리 강원지역의 이런 6.25 전쟁 당시 전투전적비가 여러 곳 있던 거군요.

◆ 최철재 장로> 그럼요. 제가 소개해 드릴 곳은 일부에 지나지 않습니다 속초, 고성, 인제, 양구 위 지역만 돌아 봤지 인제에서 현리쪽 이라든지 홍천 또 이쪽 남쪽으로는 강원도 강릉, 이쪽으로는 전혀 돌아보지 못한 상황이고 더군다나 서울 가까이에 있는 화천, 철원 이쪽에는 전혀 가 보지도 못한 상황이라서 제가 소개 하는 곳은 지극히 일부다 그런 말씀을 먼저 드립니다.

◇ 최진성> 자 그럼 최근에 다녀오신 전투전적비. 어느 곳 어느 곳을 다녀오셨는지 구체적으로 이야기 나누고 싶은데 여러 곳이 있겠지만 그 중에서 어떤 코스로 해서 다녀 오셨는지...

◆ 최철재 장로> 일단 먼저 속초에서 출발을 했습니다. 일정상 오전 열시에 출발을 하면 하루 일정이 빠듯하게 진행을 했습니다. 미시령을 넘으면 바로 백골병단 전투전적비가 있습니다. 거기가 시작이 되고요. 그곳은 우리나라 최초의 유격대 전투 기념에 대한 내용들이 담겨 있고요. 거기서 다시 진부령 정상 쪽으로 옮기면 향로봉지구 전투전적비가 있습니다. 강릉 안인에 잠수정 침투사건 있었어요. 1996년에 공비들이 25명이 왔었는데 그때 최후 섬멸지가 연화동전투입니다. 거기 들렸다가 인제, 원통을 넘어서 칠성고개를 넘어서면 서흥리를 지나서 천도리 그 다음에 서화리가 나오는데 요충지를 쭉 지나게 되고 도달한 곳이 양구 해안면, 군사적인 용어로 ‘펀치볼’ 이라고 하는 그 ‘펀치볼’ 전적비가 상당히 많습니다. 그 일부를 다 돌아봤는데 그곳은 정말로 전투가 심했던 곳이기 때문에 펀치볼, 도솔산전투, 피의능선, 가칠봉에도 있고 여러 군데가 있는데 돌아보고 오던 길에 다시 인제군 군축령에 가면 인제 지구 전투전적비가 있고요. 거기서 또 올라오다 보면 덕산리 들어가는 다리가 있는데 ‘리빙스턴교’ 라고 해서 미국의 리빙스턴 소위가 거기에서 부상을 입고 그 일로 해서 전사해서 나중에 그 아내가 미국에서 기금을 모아 “그 남편이 다리만 있었으면 전사 하지 않았을 텐데” 라고 한 유언 때문에 기금을 모아 다리를 세운 그것이 리빙스턴교가 되겠습니다. 이후 다시 이제 속초에 와서 현충탑을 돌아보는 그런 순서로 하니까 오전 열시에 출발해서 저녁 여섯시에 빠듯하게 도착하는 그런 강행군의 일정이었습니다.

◇ 최진성> 여러 코스들이 있겠지만 특별히 더 기억에 남는다 했던 코스가 있을까요?
피의능선전투 전적비(사진=최철재장로제공)

 


◆ 최철재 장로> 아, 그럼요. 가는 곳마다 우리가 피상적으로 봐왔던 6.25 전쟁을 정말 실감 있게 볼 수 있는 그런 현장들을 발견할 수가 있는데 아무래도 ‘피의능선 전투’라고 하는 위치는 해안에서 넘어가면 양구군 동면이 되겠습니다. ‘피의능선 전투’ 전적비가 있는데 그곳은 1950년 6.25 발발 그 다음해인 1951년 8월 18일부터 9월 5일까지 약 19일간 있었던 치열한 전투입니다. 왜 중요하나면 해안분지 공격을 위한 전 단계 작전으로 진행을 했는데 무려 하루에 3만 발의 포탄을 쏟아 부어야만 공격의 첫 포문이 열리는 치열한 작전인데 5일간 북한군의 3차 역습으로 인해서 서로 간 공방이 치열했던 곳입니다. 그래서 왜 피해 능선이냐 하면 거기에서 무려 4,000명의 전사자가 발생했어요. 아군이 약 2772명, 물론 전사, 부상 포함해서 그렇습니다. 적군이 한 1300명. 여기서 아군피해가 더 심했습니다. 물론 사살 된 건수로 보면 적군이 1250명이고 우리 아군의 전사자가 326명이니까 전사자로 보면 우리가 적지만 전체적인 피해상황을 보면 치열했던 것이고요. 그래서 4000여명의 사상자가 나왔기 때문에 그래서 마치 피의 강물이 흐르듯이 그렇게 피가 많이 흘렸다 그래서 미군 종군기자들이 이름 붙이기를 ‘피의 능선이다’ 라고 했고요. 그 다음에 도솔산전투 펀치볼의 1100고지에 있는 도솔산 전투는 다들 아실 겁니다. 여기도 6월 14일부터 그 해 6월 20일까지 17일 간의 치열한 전투가 있었는데 여기에서도 미 해병이 전투에 있어 선제를 했었는데 탈환을 못 하다가 우리나라 해병이 그야말로 17일에 치열한 전투 끝에 전과(戰果)로는 유례없는 놀라운 전과(戰果)로 우리가 대승을 거둔 것인데 야간 기습작전을 통해서 적 3263명이 사살되고 아군은 123명. 전과(戰果)로 보면 약 30배의 전과(戰果)를 올린것일 정도로 우리의 해병이 엄청난 전과(戰果)를 올렸습니다. 그래서 ‘무적해병’ 이란 말이 거기서 나왔지요. 무적해병이라는 말은 초대 대통령인 이승만 대통령이 그곳 현장에 직접 오셔가지고 순회 때에 붙여 준 이름이고 ‘귀신 잡는 해병’이라는 것은 그로 인해 미국 언론들이 붙인 이름이 되겠습니다. 세 번째 소개해드릴 곳은 아까 말씀드린 백골병단. 그곳은 최초의 후방교란을 목적을 둔 우리나라 유격대의 효시라고 봐야 되는데 이때 장군이 누구냐 하면 연대장을 달았던 채명신 장군입니다. 무려 25세, 젊은 나이에 지휘관을 맡아서 그때 어떤 일이 있었냐하면 우리 기독교인들도 새겨 봐야 되는데 그 채명신 장군이 필례약수터 근처에서 3월, 북한군 13명을 포로로 잡게 됩니다. 거기에 누가 있었냐하면 대남 유격부대 총사령관인 길원팔 중장이라고 그 사람은 김일성으로부터 직접 권총을 받은 사람인데 채명신 장군의 설득에도 굴복하지 않고 끝까지 전향을 거부했습니다. 그러면서 요구한 사항이 “나에게 권총으로 자결을 할 수 있도록 총알을 달라” 그 다음에 또 한 가지 요구조건이 “심부름하는 아이로 데려온 아이가 열 살짜리가 있는데 그 아이를 내가 죽거든 입적을 해서 좀 길러 달라” 그래서 채명신 장군이 흔쾌히 받아들였습니다. 실탄을 주고 자결할 수 있도록 도와줬는데 그 이후에 채명신 장군에게 사람들이 많은 걸 물었어요. “아니 도대체 총알을 주고 나올 때 뒤통수에다가 가격을 했으면 죽을 수도 있지 않느냐” 라고 했을 때 “나는 하나님이 내 방패가 되시는 걸 믿었기 때문에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았다” 라고 고백을 했습니다. 그리고 그 부탁했던 동생을 자신의 동생으로 입적을 해서 나중에 교수가 됩니다. 그래서 우리가 한국전쟁사에 있어서 하나의 휴머니즘으로 봐야 될까요? ‘부탁과 약속’이라는 하나의 일화가 마음에 남습니다.
양구 도솔산전투 전적비(사진=최철재장로제공)

 


◇ 최진성> 피의능선, 도솔산전투 그리고 백골병단. 그곳에 담겨있었던 그 당시 치열했던 흔적들 까지 나눠주셨습니다. 처음에 말씀하실 때 사실은 한국보훈선교단이 어떤 곳인지도 몰랐다 라는 이야기가 기억에 남아요. 몰랐던 이곳의 활동 한국보훈선교단 활동은 어떻게 시작하셨던 거예요?

◆ 최철재 장로> 2014년도에 강원지부 속초 순복음교회 담임하시던 김석규 목사님이 이런 제안을 하셨어요. 우리나라에도 2015년도에 왔었는데 통일독일의 도화선이 되었던 동독의 라이프치히 성 니콜라이 교회 크리스토프 보네베르거 목사님이 오셨었는데 ‘통일독일이 어떻게 됐는가’ 라고 하는 질문에 우리가 잘 모르는 사실이 통일독일의 도화선은 그 목사님의 월요 평화기도회, 이것이 하나의 시발점이 돼서 통일독일의 그런 거대한 일을 이루어 냈다 그래서 “우리 속초도 가장 북방에 있는 변방 접경지역에 있는 우리 시군으로써 통일의 한국의 미래를 보고 기도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처음으로 제안을 하시고 저에게 지회장을 맡으라 하신게 시작이었고요. 사실 그 역사는 1985년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됩니다. 1985년에 이미 그때부터 우리 속초 기독교연합회에서는 국가유공자들 위로회를 해 왔습니다. 그 당시 권태봉목사님이 처음 제안을 하셔서 기독교연합회와 한국보훈선교단이 연합해서 행사하는 것에 아무런 제한과 문제점이 없는 것이 그런 이유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위로회를 주로 하고 또 탈북민들 초청해서 안보강연도 듣고 합니다.

◇ 최진성> 여러 분들을 많이 만나셨잖아요. 기억나는 유공자 가족 있으신가요?

◆ 최철재 장로> 뭐 하도 많아 가지고 일일이 다 호명할 수는 없고 그 중에도 이제 우리 교회 권사님 한 분이 계신데 김기분 권사님이라고 그분은 남편이 군인은 아니셨고 해경이셨어요. 순직을 하셔서 지금 전몰군경미망인 속초지회장을 오랫동안 하고 계신데 정말로 교회에서도 열심이시지만 지역사회를 위해서 또 미망인들 보훈선교단, 나라사랑기도회에 빠짐없이 다 참석을 하시고 열심히 참여해 주셔서 감사한 분이고요. 아까 말씀드렸던 속초만천교회 이명형목사님. 특별하게 월남전에서 총상을 입었는데 비장이 없으세요. 농담 삼아서 이젠 비장한 각오로 목회하시는 목사님이라고 그렇게 하시는데 그 목사님이 참 기억에 남는 것이 뭐냐면 유공자이심에도 불구하고 유공자가 되신 지는 불과 몇 년 안 됐어요. 왜냐하면 그 동안 그런것을 드러내지 않아서 일찍 들어오셨으면 교회에서 좀 아들딸 학비도 안 내고 했을텐데 하하(웃음). 다 끝나고 나서 최근에 유공자가 되셨어요. 그것도 안 하신다는것을 강원지부장 김석규 목사님이 “가서 한번 서류를 내 보자”고 해서 지금은 속초에 있는 월남전 참전 기념탑에도 이름이 새겨져 있습니다.
월남전 파병에 참여한 예장 속초만천교회 이명형 목사(좌) (사진=최철재장로제공)

 


◇ 최진성> 활동하시면서 우리 지역의 유공자분들도 알게 되고 다양한 활동을 통해서 또 이제는 새로운 또 꿈도 그림도 그렇게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호국보훈의 달, 6.25 전쟁 발발 70주년을 맞아서 우리 지역 크리스천 분들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 있으시면 말씀해 주시죠.

◆ 최철재 장로> 크리스천은 애국자입니다. 왜냐하면 성경을 통해 모세가 이스라엘 민족을 건져내기 위해서 자기 모든 부귀영화를 다 버리고 그 눈물로써 광야까지 이끌어내는 지도자 아니겠습니까? 여러 선지자들을 봐도 다 나라 사랑으로 어려움을 겪고 했던 그런 모습들이 있을 때에 우리 ‘기독교는 국경은 없으나 기독교인의 조국은 있다’라는 것을 알고 6.25를 통해서 우리가 자유 대한민국이 있다는 것에 감사하고 또 이것을 끝까지 지켜야내야 한다. 왜냐하면 신앙의 자유는 우리 자유대한민국이 있기 때문에 우리가 예수님을 참으로 믿을 수 있고 우리가 예배드릴 수 있고 기도회를 할 수 있는 것이지요. 미국 워싱턴D.C에 가면은 그 6.25 참전 공원 있잖아요. 잘 아시겠지만 ‘Freedom is not free’ 라고 ‘자유는 공짜가 아니다’ 라는 그런 명구가 있는데 그것을 마음에 꼭 새겼으면 좋겠고 제가 요즘 강조하고 싶은 것은 전적비마다 사실은 우리 국군이 전부 한 게 아닙니다. 그 전에 미군이 엄청난 야포와 심지어 향로봉 같은 경우에 함포까지 동원을 해서 하루에 수만 발씩 쏟아 부었기 때문에 한국군이 올라가서 전투에 마무리도 하고 승리를 할 수 있었던 거에요. 우리 한국군, 아군의 혼자 힘으로는 도저히 안됐다. 그런 걸 볼 때 미군 피해만을 거명을 하더라도 5만명이 전사를 했습니다. 그리고 46만명이 부상을 당했어요. 그들이 왜 아무도 모르는 연고가 없는 대한민국에 와서 죽기까지 자유를 지키기 위해서 애써야 되는가? 그래서 그걸 꼭 알아야 되겠고요. 전적비를 돌아보면서 그에 대한 감사도 해야 되겠고 그래서 우리가 전적비를 돌아보는 것만이 애국은 아닙니다. 채명신 장군의 “애국은 말로만 하는 것이 아니다”라는 그 말이 참 가슴에 와 닿는데 우리가 ‘나라사랑을 위한 기도회’ 이것이 가장 중요하구요. 통일을 위한 기도회 그 다음에 북한에 억압받는 우리 백성들을 위한 자유를 위한 기도회, 이것이 꼭 한국보훈선교단이 아니더라도 교회에서, 골방에서 할 수 있는 크리스천의 의무가 아니겠는가 그런 생각을 해서 말씀으로 정리를 해 드립니다.
최철재 속초지회장은 "나라와 통일을 위한 기도를 이어가는 것이 크리스천의 의무"라고 강조했다.(사진=강원영동CBS)

 


◇ 최진성> 네. 강원영동CBS 미션인터뷰 한국보훈선교단 속초지회장 최철재 장로님과 함께한 시간이었습니다. 시간 내 주셔서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고맙습니다.

◆ 최철재 장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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